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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역사.지식.상식

현재는 1인당 GDP10만 달러,과거 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던 나라

by Mocarain 2023. 9. 13.

I서론 : 바로 아일랜드입니다.

아일랜드는 1169년부터 1921년까지 무려 75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한다면 고려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36년 동안 수많은 약탈과 수탈을 당한 것처럼, 이 어마무시한 기간 동안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수많은 수탈과 약탈을 당했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역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1840년대에 있었던 감자 대기근입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의 주식은 감자였습니다.

 

*깨알 지식 :수탈과 약탈의 차이

약탈은 완력이 가닿는 만큼 빼앗는 것. 수탈은 제도의 힘을 빌려 빼앗는 것

 

1. 감자 대기근:오늘날에도 "감자 대기근"은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때의 충격은 국가적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과거 유럽인들은 감자를 악마의 작물이라고 부르면서 식량이 아닌 가축의 사료로 써왔습니다.  농작물의 대부분을 수탈해 간 영국인들이 유일하게 가져가지 않은 것이 바로 감자였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아일랜드인들의 주식은 자연스럽게 감자가 됐던 겁니다.  그런데 1840년대 아일랜드인들을 참혹한 고통으로 몰아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시작된 감자 역병이 아일랜드에서도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감자역병은 감자의 흰 곰팡이가 생기면서 썩는 병으로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질병입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를 수확할 수 없었고, 수많은 사람이 굶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영국은 아일랜드의 농작물을 수탈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대기근을-상기하기위한-동상
대기근 조형물 (아일랜드 더블린)

 

2. 기부조차도 막았던 악랄했던 영국

심지어 오스만 제국이 아일랜드에 1만 파운드를 기부하겠다고 하자 영국 정부는 1000파운드만 기부하라고 만류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영국 여왕이 2000파운드를 기부했으니 그것보다는 적게 기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결과 약 100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은 굶주림과 장티푸스, 콜레라 같은 전염병으로 사망했고, 감자기근이 극심했던 1845년~1852년 사이에는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떠납니다. 이때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에 정착하게 되며, 현재 미국 내 인종비율 10%를 아일랜드계가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아일랜드 인구의 약 25%가 감소

영국의 무차별적인 수탈과 감자 대기근으로 인해  820만 명이던 아일랜드 인구는 약 10년 만에 650만 명으로 줄어듭니다. 영국의 강압적인 개종 요구까지 이어지자 분노가 극으로 치닫던 일부 아일랜드인들은 무장단체인 IRA를 만들어 독립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4. 750년간의 식민지배- 드디어 종지부를 찍다!

마침내 1921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장장 750년간의 기나긴 식민지배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1937년에 완전한 독립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립 과정에서 큰 손실도 입습니다.  영국과 아일랜드 조약 체결에 따라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 주와 남북 26개 주로 이루어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분단됩니다. 분단 이후에도 끊임없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내전이 계속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고, 이 때문에 국가 기능은 거의 마비 수준이 되어 버립니다.

 

 5. 경제 재건을 위한 시도, 그러나...

수차례 산업화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1950년대에는 40만 명에 가까운 아일랜드 국민들이 또다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민을 택하게 됩니다. 독립한 지 30여 년이 지난 1970년대까지 전체 수출의 70%가  영국일 정도로 의존도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유럽의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6.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

1980년대 아일랜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1987년 새롭게 취임한 찰스호의 총리가 개혁에 나서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 3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원활한 임금 조정과 노사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인 '사회적 대타협 체결'이었습니다. 노조는 임금 인상을 3년간 2.5%로 합의하고,  정부는 법인세 등을 대폭 깎고 사회보장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이 협의는 10년이 되지 않아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7.GDP로 영국을 누르며 Celtic Tiger(셀틱타이거)로 불리다

1987년 GDP 대비 117%에 달하던 부채가 1990년 96% 수준이 됐고, 1만 달러에도 못 미치던 1인당 GDP는 2001년 2만 8천 달러를 넘으면서 영국마저 누르고 서유럽 경제 강국대열에 들어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17%를 넘나들던 실업률을 약 4%로 떨어뜨리면서 Celtic Tiger(셀틱타이거-1995년부터 2007년까지 급성장한 아일랜드의 경제성장을 상징적으로 부르는 말)라는 수식어를 얻게 됩니다.

 

I본론 : 6만 달러의 기적을 이루다... 그러나 IMF구제금융 신청

1990년 1인당 GDP 13,600달러에 불과했던 아일랜드는 2007년 6만 달러를 넘기는 기염을 토합니다. 급성장하는 경제력으로 승승장구하던 아일랜드는 또 한 번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호황 절정이었던 2007년 당시 아일랜드는 건설업이 GDP 20%를 차지할 정도로 건설 붐이 불었고, 부동산과 금융사업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산업이 금융업과 외국 자본과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로 이루어진 아일랜드에는 직격탄이 날아온 겁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부동산과 금융 버블을 모조리 터트렸고, 결국은 EU국가 중 처음으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경제 부국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겁니다.

 

1.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다!

IMF의 사회복지 축소 및 임금 동결, 세금 인상, 이자율과 같은 극단적인 긴축 재정 약속을 철저히 지키면서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섭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에는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외투자 유치에  힘을 쏟습니다.

 

2. 꿈의 GDP 1인당 10만 달러를 기록하다

지난 2013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끝나고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최대 무역 및 투자국인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 유치가 이뤄졌고, 지난 2015년 GDP 성장률은 26%를 넘깁니다. 그리고 이런 아일랜드의 생존 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2022년 1인당 GDP 10만 달러를 넘기는 기염을 토합니다.

 

I결론 : 최빈국에서 세계 2위의 최부국이 되다

유럽 국가 중 최빈국에서 세계 2위의 최부국으로 탈바꿈한 아일랜드지만, 이런 아일랜드의 성장에는 분명 명함도 존재합니다. 다국적기업에 의존적이다 보니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세계적으로 낮은 법인세로 인해 조세 피난처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습니다. 낮은 세율을 유지하는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며  2021년 G7 회의에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하자는 방안을 제시해 미국 등 우방국의 압박에 못 이겨 아일랜드도 동의한 상황입니다. 이 방안은 내년 초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여서 아일랜드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물론, 아일랜드가 급성장하는데 영국의 브렉시트가 한몫했다는 시각도 많습니다. 영어권 국가이기도 하고, EU회원국이다 보니 영국에 있던 글로벌 기업들이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로 대거 이동하는 계기도 있었지만,  과거 영국이 한 짓을 생각하면 샘통이다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