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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역사.지식.상식

유대인의 역사와 '예루살렘이 중동의 화약고'가 된 이유:이스라엘 건국

by Mocarain 2023. 9. 5.

유대인이라 불리게 된 역사(초간략)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는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갈라집니다.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은 이스라엘 왕국은 200년 이상 유지됐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 왕국은 400년간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의해 함락이 되고, 100여 년 후인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쫓겨납니다. 그 결과 바빌로니아는 유다 왕국의 백성들을 본국으로 끌고 가 노예로 만들었는데 사실상 유대인은 이때부터 유다 사람들이라는 뜻의 "유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현재의 "예루살렘"이 중동의 화약고가 된 이유(초간략)

기원전 965년경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그의 아들 솔로몬은 여러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의 업적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이 기원전 957년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유대교의 원천이 되고, 훗날 기독교도에겐 예수가 부활한 성지가 되며, 더 훗날엔 무함마드가 승천해 신을 만나는 성지로 불립니다. 이러한 각각의 사유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적으로 엄청나게 민감한 지역이 되는 원인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건국 다음날 아랍 국가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 2회 시작되었고,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와 총

4차례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현재까지도 전쟁을 하고 있는 두 지역.... 끝나긴 할까요?   

 

1. 초기 기독교 시대와 유대인들의 처지:

기독교가 로마제국과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유대인들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에서 엄청난 고난을 받았지만, 4세기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 후부터 기독교는 유럽 여러 나라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로 보는 유대인들은 강한 적개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중세 시대:

차별과 핍박 속에서의 생존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유대인들은 종교적 차별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차별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생존해 냈습니다.  그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상업과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껴 적개심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시온주의 사상

유대인들이 역사적 고향땅에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고국을 얻어 그들 고유의 삶과 정체성을 키워나가고자 함

 

현재와 건국:

이스라엘의 탄생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며 테오도르 헤르츠프 등 주축인 사람들이 주도하여 "유태주의"를 주창하였고, 결국 1948년에 이스라엘이 선포되면서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독립된 국가를 갖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유대인 역사는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계속해서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남은 힘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강한 생존력과 교육에 대한 중요성 인식은 유대인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남은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중세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종교적 차별과 사회적, 경제적 핍박 속에서도 자신들의 교육 체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결국 20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이라는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 역사는 지속적인 도전과 변화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남은 힘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유대인의 역사와 그들이 보여준 생존력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의-대표적-역사적-장소-통곡의-벽
이스라엘 통곡의 벽

통곡의 벽

통곡의 벽은 오늘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위치한 유대교 신자들의 중요한 순례지로, 그 기원은 성전 산이라고도 알려진 곳에 위치한 제2성전의 파괴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2성전은 원래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6세기 BC에 재건되었는데 기원전 70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시켰는데, 이때 성전의 외벽 일부가 남아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남아 있는 벽을 통해 성전을 추억하고 그 파괴를 애도합니다.

 

1. 유대인들의 종교적 중요성: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신성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솔로몬 성전이 자리하던 곳으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교감과 경배를 위한 중요한 장소입니다.

2. 역사와 기념: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이 과거 몇 천 년 동안 다양한 외부 침략과 파괴를 겪어온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상기시키고, 그리고 동시에 강인함과 저항력을 상징합니다.

3. 분쟁 지역에서의 상징성: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서 위치해 있어, 정치적인 갈등과 갈취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벽 주변에서 종종 발생하는 갈등 및 시위는 양측 사이에서 심리적, 정치적 긴장을 반영하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4. 평화와 소원: 많은 사람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고 소원을 빕니다. 종교 담론상으로 평화와 화해를 위해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많은 인간들이 모여든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5. 문화 및 관광 명소: 통곡의 벽 주변 지역은 예루살렘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방문객 및 순례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해당 지역 주변에는 호텔, 레스토랑 및 기타 관광 시설 등이 개발되어 외부 방문객을 환영합니다. 정리하자면,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은 유대인 종교와 역사상 큰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정치적 분쟁 지역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관련된 장소입니다.

 

유대계 성공한 인사들은 셀 수 없이 많으나 대표적인 몇 사람

1.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 창립자

2.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창업자

3.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감독

 4.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전 CEO

5. 세르자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

6.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의 사업가 및 정치가

7. 마크 스티븐스: 애플 전 CFO